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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를 종강하면 꼭 제주에 가서 겨울 방어 낚시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바다낚시에 문외한이 낚시 준비를 하려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다. 그냥 무작정 저질러 놓고 수습하는 게 수월할 것 같아 제주 겨울 방어낚시에 대해 인터넷 검색해서 평이 좋은 위미항 산타크루즈호 선장님과 통화했다. 한 번도 바다낚시를 해본 적이 없는데 낚시가 가능한지, 장비 대여가 가능한지 등을 여쭈어보았더니 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장비와 채비도 대여가 가능하다고 몸만 와도 된단다. 다짜고짜 날짜를 예약하고 비용부터 입금했다.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고 항공편과 숙소를 예약했다. 이젠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때로 핑계를 만들고 도망가려는 나 자신을 목표로 몰아가는 방법은 퇴로를 모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을 나 스스로 잘 안다.
제주 겨울 바다로
배가 출항하는 항구인 위미항 근처 펜션을 얻었는데 방이 너무 추워서인지 뒤척이며 비몽사몽으로 밤을 보냈다. 아직 깜깜한 새벽 멀미약부터 챙겨 먹고 펜션을 나선다. 서울은 눈도 많이 오고 한파주의보 내렸다는데 제주는 바람은 제법 부나, 못 견딤 만큼의 칼바람은 아니다. 어두운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처럼 구름이 가득하다. 항구에는 벌써 불을 환히 밝힌 배들이 가득하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늘 감동이다.
배에 올라 선장님께 인사드리고 승선명부를 작성한 후 일행들과 인사했다. 오늘은 총 4명이 같이 낚시한단다. 복장이며 채비들이 전부 전문 낚시꾼들로 보인다. 맨몸으로 배에 오른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 듯하여 괜히 기가 죽는다. 출항할 때 뒤를 돌아보니 어슴푸레 보이는 한라산 실루엣과 작은 마을들의 불빛이 가물거린다.
좁은 선실에서 나누는 낚시꾼들의 과장 섞인 무용담을 부러워하며 듣다 보니 어느새 낚시할 장소에 도착했다. 지귀도와 섶섬이 멀리 떠 있고 눈 덮인 웅장한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풍경에 낚시하러 온 것도 잠시 잊는다.“수심 50m에 어군이 보입니다.” 하는 선장의 안내에 따라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낚시 준비를 한다. 지깅 낚시가 처음인 나는 선장님이 개인 지도를 해 준다. 메탈 지그를 내리고 저킹하는 법에 대해 선장이 시범을 보이고 따라 해 보라고 시킨다. 따라하는 내 동작이 미숙한지 구분 동작으로 해보라고 한다. 구분 동작이라.. 이거 군에서 많이 들어보던 건데, 총검술도 아니고 낚시하러 와서 구분 동작이라니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옆의 낚시꾼이 자기가 배낚시 많이 다녀봤지만 저렇게 친절한 선장님은 없다라고 귀띔해 준다.
나도 저킹하는 법과 릴 감는 법 등에 대해 연속동작까지 연습을 마치고 낚시를 시작한다. 새끼 갈치를 닮은 은빛 금속 지그가 낙엽이 떨어지는 듯한 궤도를 그리며 검푸른 바닷속으로 사라져 간다. 낚시줄이 다 풀리고 저킹을 시작한다. 저킹을 하며 감아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는데 생각보다 지그의 무게감이 크고 팔과 어깨에 부담이 된다. 옆 젊은이의 저킹 속도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갑자기 말이 많던 옆 아저씨가 “히트”하고 외치더니 휘어진 낚싯대를 들고 씨름하기 시작한다. 모두의 부러운 시선을 받아 가며 제법 큰 부시리를 건져낸다. 초보인 나는 부러움과 불안감, 기대감에 마음만 바빠진다. 저킹은 제대로 하는 건지, 과연 나 같은 초보 낚시꾼의 바늘에도 방어가 걸릴 것인지 자신이 없다.
드디어 생의 첫 수
저킹을 하는데 갑자기 낚싯대의 무게감이 없어지더니 툭하고 묵직한 놈이 낚싯줄을 끌고 나간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고 릴이 잘 감아지지 않는다. 끌고 가는 물고기의 힘에 당황하며 “히트”하고 소리쳤다. 선장님이 달려오고 주변 낚시꾼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찌지직 하며 드래그가 풀리는 소리에 낚싯대를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간다. 잘 감기지 않는 릴을 한 바퀴 씩 감으며 한참을 씨름한다. 거칠게 저항하던 놈이 최후의 발버둥을 친다. 결사적으로 올라오기를 거부하며 몸을 옆으로 뉘여 희멀건 배까지 보이며 좌우로 미친듯이 횡영을 하며 버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팽팽한 긴장이 한 가닥 줄을 통해 짜릿하게 전해진다. 주변의 낚시꾼들이 “우와 잿방어다, 크다”라고 외치며 같이 흥분한다. 선장님이 뜰채를 들고 와서 배 아래로 처박아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 하라고 알려준다. 낚싯대를 강하게 잡고 버티며 릴을 감아 조인다. 마침내 수면으로 나온 잿방어를 뜰채로 걷어 올린다. 꾼들의 부러움 섞인 환호가 터지고 갑판에 올려진 잿방어는 부릅뜬 눈으로 펄떡거린다. 선장님이 낚싯 바늘을 제거하고 클리퍼로 들어 내게 건넨다. 생애 처음으로 낚아 올린 대물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며 사진을 찍어 주신다. 사진이 잘 나오게 찍기 위해 “손을 들어봐라, 더 가운데로 해봐라.” 주문하시는데 고기가 무거워 한 손으로 들고 포즈를 취하기 버겁다. 첫수를 하고 주변 꾼들의 축하를 받고 나니 “낚시의 손맛이라는게 이런 느낌과 기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바다낚시로 처음 낚아 본 잿방어 지깅의 매력에 빠지다
이제 배는 출렁이는 파도보다 더 큰 흥분과 기대감으로 출렁이고 있다. 선장님은 부지런히 배를 포인트로 이동하며 “삑” 신호를 보내고 그때마다 릴을 풀어 지그를 내리며 부지런히 저킹을 한다. 어깨와 팔이 빠질 듯이 아프다. 지깅 낚시가 중노동이란 말을 이젠 이해하겠다.
지루해 하고 있을 즈음 두 번째 입질이 왔다. 회유성 어종들이라 그런지 입질이라는 표현보다는 매우 난폭하게 미끼를 채가는 느낌이다. 순간 낚싯대에 하중이 묵직하게 걸리며 활처럼 휘고, 드래그가 풀리며 찌리릭 하는 마찰음을 낸다. 처음에는 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 릴을 감기도 버겁다. 이번에는 줄삼치라고 불리는 큼직한 놈이 올라왔다. 앞서 한 번의 경험이 있어 덜 당황하며 두 번째 놈까지 랜딩에 성공했다. 내가 하는 저킹이 완전하지는 않아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또 해보자는 의욕이 차올랐다.
줄삼치 어깨와 팔의 뻐근한 통증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더 채비를 내리기 위해 부지런히 지깅을 했다. 기다리던 세 번째 입질을 받고 이전 보다는 더 자신있게 끌어 올리고 있었다. 랜딩하기 전 허연 윤곽을 보이며 발버둥 치던 놈이 배 위에 낚시군들을 보고 놀란 듯이 순식간에 배 밑으로 처박는다. 낚싯대를 강하게 들고 릴을 더 감아 끌어내려는 순간 툭하고 줄이 터진다. 아쉬움에 주변에서도 탄식이 나온다. 선장님이 고기가 배 아래로 들어가면 배에 낚싯줄이 쓸려 끊어지기 쉬우니 마지막 랜딩할때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끊어진 채비를 갈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서둘러 지그를 다시 내린다. 이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희망과 흥분에 마음이 바빠지고 낚싯대의 저킹이 빨라진다.
포인트를 옮기고 “삑” 소리와 함께 지그를 내리던 중 여기저기서 “히트” 소리가 거의 동시에 나더니 내 낚싯대도 활같이 휘면서 신호가 왔다. 네명의 조사가 각자 씨름하고 있다. 네 명 모두 랜딩에 성공했다. 이번엔 70cm급 부시리를 올렸다. 모두 환호하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배위는 흥분과 축제 분위기다.
기념사진 점심시간이 되어 라면과 김밥에 오늘 올린 참치 한 마리를 회를 떠서 모두 행복한 점심 식사를 했다. 살아가면서 막 잡은 생참치를 회로 먹어 보다니 이것이 바다낚시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점심 후 몇 차례 더 포인트를 옮겨 낚시를 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항구로 돌아오는 길은 뿌듯함에 찬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필로그
2023년 12월 18, 19일 양일간 위미항 산타크루즈 호에서 버티컬 지깅 선상낚시를 했다. 바다낚시 문외한이고 낚시 장비도 하나 없었지만 친절한 선장님을 만난 덕분에 마음껏 즐긴 신나는 낚시였다. 조과도 좋았고, 지깅 낚시를 몸으로 배우며 경험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준비 없이 다소 무모하게 시작한 시도였지만 충분히 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한 경험이었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해보고 싶은 것을 경험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일 인것 같다. 다음엔 또 무슨 신나는 경험들을 기획해 볼까? 나의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폭설로 인해 귀경 편 항공기가 결항이 되면서 호텔에 더 묶게 되는 보너스 같은 일이 생겨서 이번 낚시 경험을 글로 남겨둔다.'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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